왜 떠올리기 싫은 과거와 만나야 하는가
link  호호맘   2021-05-27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굳이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들추어낼 필요가 있나요? 그렇다고 이미
지난 일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괜히 마음만 더 혼란스러워지는데....."

면담을 시작하는 환자들이 흔히 내게 던지는 질문이다.
하긴 슬프고 괴로운 과거의 기억을 들추는게 뭐 좋은 일이 있을까. 너무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는데,
만일 망각의 약이라도 있다면 한 알 먹고 깡그리 잊어버렸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괜히 엉뚱한 사람한데 화풀이
하게 될까바 꾹꾹 참고 있는데, 왜 일부러 그 잊고 싶은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한단 말인가?

동굴이 있었다. 그 동굴 안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닌게 아니라 바람부는 날에는 그 동굴에서
흐느끼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밤이 되면 커다랗고 시커먼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무도 그 동굴안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안에 샘물이었다. 날이 가물어 먹을 물이 필요했지만 사람들으 괴물이 무서워서 아무도 선뜻
동굴 안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수소문 끝에 유명한 동굴탐험가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가 앞장서서 비추는
불빛을 따라 동굴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여기저기 뾰족한 돌이 많아 몇몇 사람은 돌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샘물을 찾아 계속해서 동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가니 어디선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여왔다. 동굴탐험가가 등불을 빛추었다. 그랬더니 작은 쥐 몇마리가 과일을 갉아먹고 있는게 아닌가.
동굴안에서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저 조그만 쥐였구나, 쥐가 과일을 갉아먹는 소리가 바람에 울려 그렇게 크게 들렸고, 동굴 반대편으로 들어도는
달빛 때문에 쥐의 그림자가 그렇게 크게 일렁거렸던 거구나'.
이후 사람들은 안심하고 맑은 샘물을 먹을 수 있었다.

정신분석은 바로 이런 과정과 같다. 동굴은 우리의 무의식이고 그 안에 있는 쥐는 과거의 무섭고 힘들었던 기억이다.
동굴 안의 샘물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창조성이자 참 자아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거에 상처받고 무서웠던 기억에
비추어 현재를 바라보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작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건강한
부분을 찾아 내지 못한다. 여기서 동굴탐험가는 바로 정신분석가를 말한다.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지도와 탐험의
경험을 갖고 있는 분석가는 환자와 같이 그의 무의식을 탐험한다.

이때 그 실체는 어릴 적에는 놀라고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충분히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다.
괴물이라고 생각해 두려움에 떨며 감히 들여다볼 엄두를 못 냈는데, 알고 보니 쥐라는 사실에 안도한 것처럼
말이다.

동굴을 탐험하는 과정은 바로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자유연상과 같다. 우리는 마음속 이야기들을 꺼내면서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혼란스럽고 두려웠던 나 자신의 감정과 만나게 된다. 그러면 왜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내가 부족하거나 못났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걸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처럼 그때 나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면 과거와 화해할 수 있게 된다.







김혜남 정신분석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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